동화나무 이야기/동화나무 둘레(이웃)

세상 어디에도 없는 도시락

동화나무 2013. 10. 16. 09:49

 

서울 혁신형 사회적기업 ‘소풍가는 고양이’

| 2013.10.15

 

도시락

글/ 황세원(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 홍보팀장)

[서울톡톡]  "이런 데는 없죠. 아무데도 없어요."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 위치한 조그만 도시락가게 '소풍가는 고양이'. 여기 도시락은 특별하다. 뭘 안 넣고, 더 넣어서가 아니다. 만드는 사람들이 특별나서도 아니다. 그들이 지나온 과정이 '무모한 도전'이라 할 만큼 전에 없던 것이고, 앞으로도 그런 길을 갈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세상 어디에도 없는 도시락'을 싸고 있는 '소풍가는 고양이'들을 만나 봤다.

"오늘 제 생일이에요. 제가 천사(1004)거든요."

지난 10월 4일, 우리 나이로 스무 살 생일을 맞은 신재현(19) 씨의 생일파티가 조촐하게 열렸다.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 조그맣게 자리 잡은 도시락집. 테이블이라곤 세 개뿐이어서 직원들만 둘러앉아도 꽉 찬다.

지난 10월 4일, 스무 살 생일을 맞은 신재현 씨의 생일파티가 조촐하게 열렸다

잘 하든 못 하든 '같이 가는' 회사

신씨는 '소풍가는 고양이'에 최근 합류한 신입사원이다. 그의 교육은 한 살 많은 홍세정(20) 씨가 맡았는데, 홍씨는 이곳의 창립멤버이자 주식을 보유한 이사다.

일하기 어떠냐는 질문에 신씨는 "여기는 일을 잘 하든 못 하든 '같이 간다, 같이 살자' 이런 개념이다. 사회적기업이라 그런지 좀 다르다"고 했다. 듣고 있던 홍씨가 "더 일해 봐야 알 것이다"라고 자못 준엄하게 끼어들자 신씨가 "네네, 할머니" 하고 응수해 웃음보가 터졌다. 

2년 반 전인 2011년 5월 문을 연 이 회사는 '후기 청소년의 진로 역량을 강화하고 지역사회와 일을 통한 자립·자활을 모색한다'는 목적으로 2012년 '서울 혁신형 사회적기업'에 선정됐다. 후기 청소년이란 만 18~24세의 청소년 및 청년을 이르는데, '소풍가는 고양이'는 그 중에서도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비진학', 학교를 그만둔 '탈학교', 보육 시설에서 자립해 나온 '탈시설' 청소년들이 일하는 회사다.

어른과 청소년 모두 성장하는 회사

총 8명의 구성원 중 4명은 이들과 같은 후기 청소년, 나머지 4명은 '어른'이다. 대표를 맡고 있는 박진숙(44) 씨는 "어른도 성장하고 청소년도 성장하는 회사가 우리의 진짜 목표"라고 말한다.

`소풍가는 고양이`의 박진숙 대표

박 대표는 본래 '하자센터'(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의 직원이었다. 그 곳에서 2년 기한의 청소년 자립 프로젝트 '연금술사'를 담당했는데, 시작할 때만 해도 2년 후 도시락가게 사장이 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본래 이 프로젝트는 교육 과정이었어요. 1년차에 선발한 후기 청소년들을 위해서는 사회적기업 인턴십 프로그램을 운영했어요. 완전히 망했죠."

업사이클링 디자이너, 문화기획자, 여행기획자 등 나름대로 '핫'한 직업 과정을 배울 수 있는 사회적기업에 인턴십을 보냈는데, 견뎌낸 청소년이 없었다. 이 때 깨달은 것이, '꿈도 꾸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꿈보다 먼저 필요한 `돈, 믿음, 소속감`

"이 친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돈, 자립할 수 있는 생계비였어요. 그리고 자기가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이라는 믿음'과 '소속감'이었죠."

생계비를 벌어야 하는 청소년들에게는 월 20만 원 안팎의 교육비만 주는 인턴십이 버거웠고, 2~3년 후 '멀쩡한' 직업인이 되리라는 믿음이 없으니 긴 과정을 인내할 이유도 없었다. 또 보육 시설 또는 학교의 꽉 짜인 규율 속에서만 지내다 나와 혼란을 겪는 중인 청소년들이 갑자기 기성 회사의 조직문화에 적응하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연금술사 2기는 '창업 과정'으로 선회했다. 일단 돈을 벌고, 조직문화를 스스로 만들면서 자립을 모색하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이 때 다른 청소년 창업 과정과 차별화 한 점은 '어른과 청소년이 같이 창업한다'는 원칙을 세운 것이다.

"청소년끼리 창업하게 하고 실패하는 사례를 많이 봤어요. '청소년 사장'을 빨리 배출하면 멋지게는 보이지만, 그 사장이 나가서 청소년하고 거래하는 게 아니잖아요. 대면해야 하는 건 '어른들의 시장'인데, 시작 정도는 어른들과 함께 하는 게 맞다고 봤어요."

소풍가는 고양이 간판

안일한 시작, 6개월 만에 '비명'

'시작 정도' 함께 하려던 박 대표와 또 다른 스태프 차주희(29) 씨가 아직도 여기서 일할 뿐 아니라 아예 하자센터를 그만두고 '올인'하게 된 것은, 결코 전망이 좋아서가 아니었다. 그러지 않고서는 이 가게를 이어갈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만큼 대책 없이 시작한 사업이었죠." 박 대표는 '도시락 배달'이라는 아이템을 정한 것부터 "밥집 하면 굶지는 않겠네", "남으면 우리가 다 먹지 뭐"라는 안일한 생각에서였고, 원가 계산도 안 해 보고 '반찬은 반찬가게에서 사 오고 밥만 해서 팔자'고 생각했을 만큼 경험도 없었다고 털어놨다.

음식만드는 남녀

실제로 성미산 반찬가게 '동네부엌'에서 반찬을 사오고, 밥만 지어서 팔기를 6개월. 지원 받은 창업 자금을 착착 까먹기만 하니 "도저히 안 되겠다"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직접 조리하기로 결정한 뒤 직원들이 '동네부엌'에 가서 조리를 배웠고, 창업 1년만인 2012년 5월부터는 모든 음식을 직접 만들게 됐다. 서서히 수익이 나기 시작한 게 이 때부터다.

'어른'이고 '청소년'이고 경험이 없으니 실수도 셀 수 없었다. 창업 두 달 만에 덜컥 주문 받은, 전 직원이 2시간만 자고 겨우 완성한 주먹밥 1,200개가 쓰레기통으로 직행한 사건도 있었다.

"주먹밥 싸는 데만 집중하느라 비가 쏟아지는 줄도 몰랐던 거예요."

그 날은 하필 우면산 산사태가 난 2011년 7월 27일. 끔찍한 도로 정체 끝에 행사장에 도착하니 참석자들은 반 넘어 돌아갔고, 주먹밥은 상해 있었다. "저희는 그 일을 '727 사태'라고 불러요. 눈물 없이는 떠올릴 수가 없죠."

그래도 반전은 있다. 딱 1년 만에 같은 단체가 다시 주문을 했는데, 이번에는 완벽하게 준비해 가서 "완전히 달라졌다", "훌륭해졌다"는 칭찬을 들었다는 것이다.

"보통은 두 번 기회를 안 주잖아요? 교육 단체여서인지 기회를 다시 주더라고요. 그런 분들이 있어서 우리가 일할 수 있구나, 우리 힘만으로 되는 게 아니구나 했죠."

어른이란 무엇인가?

배달은 운전도 해야 했고, 영업과 직결되기 때문에 박대표가 주로 해왔는데, 이것이 박대표 개인에게는 큰 시련이었다. 청소년들에게 "직업에 귀천이 어디 있어. 어떤 일은 부끄럽다고 생각하는 게 부끄러운 거야"라고 말하던 그가 '배달부'로 경비 아저씨와 다투고 있는 자기 모습에 좌절했던 것이다.

"막상 겪어보니 말 같지 않더라고요. 경험해본 적도 없으면서 아이들에게만 옳은 소리 해댄 어른이었구나 철렁했어요."

이 때 돌아본 것이 '어른이란 무엇인가'다. "청소년들에게 자립하라면서 나는 언제 자립을 했는가, 나는 3년마다 직장을 바꿨으면서 왜 청소년들에게는 평생직장을 가지라고 했나, 생각하다 보니 '판단'과 '결정'을 할 수 있고 '책임'을 질 수 있어야 어른이더라고요."

소풍가는고양이 외부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박대표는 회사에 대한 '지부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혁신형 사회적기업 사업에 지원한 이유도 그와 연관이 있다. "사업비 지원도 필요하긴 했지만, 우리 사업이 '사회 문제 해결형', 즉 또래 청소년들에게 모델이 되는 가치 있는 사업이라는 인정을 받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선정 과정의 발표와 면접 등을 전 직원이 함께 겪었고, 그 결과 "우리 회사를 괜찮고 좋은 사업이라고 하는구나"라는 발견을 자부심으로 연결시킬 수 있었다.

'균형 있는 삶'을 위한 원칙들

창업 멤버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청소년 한 명은 최근 회사를 떠났다. 아쉽기는 해도 이들은 "잘 된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전에는 "꿈이 뭐냐고 묻는 게 제일 싫다"던 청소년들이 차츰 하고픈 일들을 찾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럴 수 있는 데는 '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회사 방침 영향도 있다. 이 회사의 근무시간은 하루 6시간으로, '많이 일하고 많이 벌기'보다는 '생계에 필요한 만큼 벌고 나머지는 하고 싶은 일 하기'가 원칙이다. 청소년 직원들 요구에 따른 원칙인데 박대표는 "차라리 돈만 잘 벌면 되는 회사라면 골치가 덜 아플 텐데"라고 푸념하면서도 "이 원칙 덕분에 주위 청소년들에게 '가고 싶은 회사', '좋은 회사'라는 평을 듣는다"고 자부했다.

자부심을 위한 원칙들은 더 있다. 망원시장 등 지역 시장과 거래하기, 대형마트 제품과 인공 식재료 안 쓰기, 국내산만 쓰되 외국산을 써야 할 때면 정확히 공지하기, 아무리 까다로운 주문 사항도 최대한 받아주기 등이다. 그 덕에 이제는 도와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맛있고 친절해서' 이용하는 고객들이 꽤 많아졌고, 안정된 매출로 월급도 조금씩 오르고 있다고.

그러나 이들의 포부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최근 법인명을 '소풍가는 고양이'에서 '연금술사'로 바꿨는데, 하자센터에서 '연금술사'라는 프로젝트를 아예 가지고 나왔기 때문이다. 청소년 자립 프로젝트를 이어가겠다는 것이다.

'시작점' 만들기 프로젝트

"보통 사람이 사회생활을 할 때는 '시작점'이 있죠. 거기서 인맥을 쌓고 커뮤니티를 만들어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거예요. 하지만 어떤 청소년들에게는 그 시작점이 아예 없어요. 그대로 방치되고 있죠. 사회는 이들에게 시작점을 만들어 주는데 공을 들여야 합니다. 일터와 삶터, 공동체 기반을 마련하고 균형 있는 삶을 살 수 있게 마중물을 부어줘야 하죠. 저희가 그 모델을 만들어 볼 겁니다."

이들의 꿈은 다시 처음으로, '청소년 사장'을 배출하겠다는 소망으로 돌아가 있다. 박대표는 "머지않아 나올 것 같다"고 낙관한다. 그리고 이 한 명을 모델 삼아 다른 청소년들도 시도하고 도전해 볼 수 있게 하고 싶다고.

이것이 이들이 오늘도 열심히 도시락을 싸는 이유, "함께 하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면서 소풍가듯이 미지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이유다. 

문의 : 소풍가는 고양이(www.somssizip.org/sogo) 02-336-5090
- 출처 : 서울특별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http://www.sehub.net)